2011년 개봉한 영화 《평양성》은 삼국시대 말기, 고구려와 신라의 마지막 전투로 알려진 ‘평양성 전투’를 배경으로 한 코믹 사극이다.
김진민 감독, 정진영·이문식 주연으로, 《황산벌》의 정신을 계승하며, 역사적 전쟁을 풍자와 유머로 재해석한 독특한 시도가 돋보인다.
실제 역사와 과장된 픽션이 교차하는 이 영화는 단순한 웃음을 넘어, 권력과 전쟁의 아이러니를 날카롭게 조명한다.
고구려와 신라, 그리고 평양성 전투의 역사적 진실과 상상
《평양성》은 668년 실제 평양성 함락 전투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
이 전투는 고구려의 마지막 수도 ‘평양성’이 당나라-신라 연합군에 의해 함락되면서, 한반도의 삼국 시대가 끝나는 결정적 전투로 기록된다.
당시 고구려는 내부적 분열과 외부의 압력 속에서 이미 약화된 상태였고, 연개소문의 죽음 이후 고구려의 귀족들 간 권력 다툼이 격화되며 정치적 혼란이 극에 달했다.
영화는 이 복잡한 역사적 상황을 굉장히 유쾌하게, 그러나 결코 가볍지 않게 풀어낸다.
전면에 내세운 인물은 신라 장군 ‘대갈장군’과 고구려 측 지도자들이다.
‘대갈장군’은 《황산벌》에서도 등장했던 인물로, 시대적 아이콘이라 할 만큼 단순하고 무식하지만 정 많은 캐릭터다.
그가 이끄는 신라 병사들은 사실 전쟁의 본질도, 이유도 모른 채 명령에만 복종한다.
영화는 바로 이 지점, 전쟁의 이유와 목적을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고구려 역시 마찬가지다.
연개소문의 사망 이후 정치의 중심을 잃은 채, 귀족들의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킨 고구려 내부는 사실상 전쟁 이전에 스스로 무너지고 있었다.
당나라의 간섭, 신라의 배신, 외세의 힘을 빌려 형제를 무너뜨리려는 삼국의 동맹관계는 오늘날의 국제정세를 떠올리게 한다.
《평양성》은 이런 복잡한 맥락을 해학적으로 풀어낸다.
진지하게 다루면 무거운 주제들을 오히려 웃음으로 녹여내며, 관객은 역설적으로 더 깊은 성찰을 하게 된다.
“무엇이 전쟁을 일으키는가?” “누가 진짜 승자인가?”
영화는 결코 직접 말하지 않지만, 유머의 틈새에서 질문을 던진다.
권력의 민낯, 정치적 위선과 병사들의 희생
《평양성》의 진짜 주인공은 ‘병사’다.
영화 속에서 고구려든 신라든, 지휘관의 명령은 자주 엉뚱하거나 무책임하다.
상명하복의 전통적 구조 안에서, 명분 없는 전쟁에 내몰리는 병사들은 그저 ‘말 잘 듣는 기계’로 그려진다.
대갈장군은 전투보다 가족이 걱정이고, 병사들은 배고픔과 추위, 이유 모를 싸움 속에 살아남는 것이 최우선이다.
하지만 그들을 움직이는 건 언제나 ‘위’의 명령이다.
명령을 내리는 이들은 현실을 보지 않는다.
그들은 조약을 운운하고, 전략을 논하지만, 실상은 자기 권력과 체면, 욕망에 더 가깝다.
고구려 쪽도 다르지 않다.
정치적 대립, 이해관계, 내부 배신.
연개소문의 죽음은 국가의 위기이지만, 귀족들에게는 권력 쟁탈의 기회일 뿐이다.
나라가 망해가도, 사람들은 자기 살 궁리에만 몰두한다.
이런 모습은 과거의 정치만이 아니라, 지금의 현실 정치와도 놀랍도록 닮아 있다.
《평양성》은 이 모든 구조적 위선을 웃음으로 조명한다.
어설픈 외교전, 전략 없는 공격, 목적 잃은 전투.
그러나 웃고 있지만, 관객은 알고 있다.
이 이야기 속에서 정말 슬픈 존재는 병사이며, 백성이다.
이 영화의 유머가 단순한 풍자가 아닌 사회적 메시지로 확장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또한, 대갈장군이라는 캐릭터는 단순한 ‘코믹 군인’이 아니다.
그는 시대의 희생양이자, 권력자의 도구이며, 평범한 가장이기도 하다.
그의 인간적인 고민과 갈등은 오늘날 평범한 시민들의 마음과 다르지 않다.
웃기지만, 결코 웃기기만 한 인물은 아니다.
사극 코미디로 재구성한 역사, 그 의외의 통찰
한국 사극영화는 종종 과하게 무겁거나, 지나치게 미화되는 경향이 있다.
그 속에서 《평양성》은 유머와 상상력으로 무장한 새로운 접근이었다.
역사적 고증을 적당히 유지하면서도, 극적 구성은 코미디에 가깝다.
그렇다고 내용이 가볍지만은 않다.
각본에는 촘촘한 시대 풍자가 숨어 있고, 등장인물 하나하나가 사회적 상징성을 지닌다.
예를 들어 당나라 사신은 강대국의 오만함을, 고구려 대신들은 내부 분열을, 신라 왕족은 외세 의존의 폐해를 상징한다.
결국 영화는 한 가지로 귀결된다.
전쟁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나라를 위한 일인가, 아니면 권력을 위한 장기말인가.
평범한 병사들의 희생은 누가 기억하는가.
삼국의 전쟁을 그린 영화가, 오히려 지금 우리를 묻는 것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남는 건, 승리도 패배도 아닌 공허다.
나라가 무너졌고, 왕은 남았지만, 그곳에 희망은 없다.
이 결말은 놀랍도록 현실적이다.
코미디는 끝났지만, 진실은 가슴에 남는다.
《평양성》은 이처럼 웃음 뒤의 여운이 더 깊은 영화다.
[결론: 요약 및 Call to Action]
《평양성》은 삼국시대 마지막 전투를 배경으로,
권력과 전쟁의 허상을 유쾌한 시선으로 풀어낸 풍자 코미디 사극이다.
역사를 소재로 하되, 그 안의 인간을 조명하고, 웃음 뒤에 진실을 남기는 이 영화는
지금의 세대가 반드시 다시 봐야 할 ‘웃픈’ 이야기이자,
과거를 통해 현재를 돌아보게 만드는 시대의 거울이다.